[주말 가톨릭] 우리는 캐릭터일 뿐

Posted at 2010.09.13 16:52 // in Church art // by MOOVA 무바㏇
어느 러시아 우주인이 지구로 귀환하여 "하느님을 보지 못했노라"고 말했을 때, 루이스는 그건 햄릿이 셰익스피어를 찾겠다고 다락방엘 올라가는 거랑 다름없다고 일갈했다.

신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는 실험실에 갖다놓고 경험적인 방법으로 분석할 수 있는 어떤 물체가 아니다. 극작가가 자신의 극에 등장하는 인물에게 말을 걸듯이, 신은 그렇게 우리에게 말을 건다. 캐릭터인 우리들은 극작가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지도 모르지만, 작가가 스스로에 대한 정보를 얼마만큼 연극 안에다 내놓기로 하느냐에 달려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마치 완전히 우리 우주 안에 있는 산소나 수소 같은 물체라든지 태평양의 어느 섬처럼,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다.

2010:09:13 16:49:11

믿는다는 것은 그 자체를 연구하는 일이 아니다.
그 자체를 연구하면 시력만 잃게되게 때문이다. 광신도들이 이에 속한다.

내가 태양이 떳다고 믿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태양을 보기 때문만이 아니라, 태양으로 인해 만물을 보기 때문이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것도 꼭 같은 이치다. 태양을 연구하겠노라고 태양을 쳐다본다고 상상해보라. 그럴 수는 없다. 눈이 다 망가지고 시각 능력은 엉망이 될 테니까. 태양의 존재, 그 힘, 그 본성을 배우기 위한 훨씬 더 좋은 방법은, 태양이 보여주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태양이 어떻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양하고 우리로 하여금 만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행위가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 그 어느것도 성취할 수 없는 사랑과 아름다움을 동경한다. 우리는 의미와 목적을 알고 싶은 뿌리 깊은 욕망을 지니고 있다. 과연 세계관이 이런것들을 가장 속 시원히 설명해 주는 걸까?

만약 성경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벽장 속에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극작가'이다. 경험론적인 조사를 통해서 수동적인 어떤 물체를 찾듯이 그 하나님을 찾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보다 우리는 그 신이 우리 영혼속에, 우주 속에, 써놓은 그의 실체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이 존재한다면, 우린 그가 우리의 합리적 기능에 호소함을 깨닫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가 "그의 형상을 따라" 합리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면, 이 것을 또한 이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다.

이 "극작가"를 알게 되는 것은 오로지 개별적인 계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신과 인간조건에 대해 성경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태양을 연구하는 일이 아니라 태양이 어떻게 세상을 밝히고 있는지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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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큐티] 빌립보서에서 얻는 지혜

Posted at 2010.08.29 11:45 // in Church art // by MOOVA 무바㏇
메시지신약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성경학습 > 신약성서
지은이 유진 피터슨 (복있는사람,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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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신방황하는영혼을위한희망의카운터컬처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일반 > 기독교일반
지은이 티머시 켈러 (베가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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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신신은과연인간을창조했는가?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학의이해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 (김영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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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독교나 천주교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은 별로 좋지 못하다.
사대강이니, 뭐니 해서 교인들이 뭉쳐서 현 정권에 대해 권력을 휘두르는것 정말 보기 흉할 정도이다. 
북한서 70일간 있었던 한상렬목사를 보자. 그가 믿었던 믿음이라는 잦대는 시대의 이데올로기나 제도적 틀도 무시해버렸던 좋은 사례중에 하나이다. 그의 지나친 맹신이 다른가치들을 무시해 버렸던 것일까?
믿음을 보기좋게 갖으려 했던 나에게도 그런 모습들은 정말 창피하기까지 한데... 처음에 내가 믿음을 갖고자 했던 것은,

주변 어르신들의 권유로 "믿음을 한번 갖어보도록" 이라는 충고를 너무 많이 들었던 탓도 있었고, 주변에 열성적으로 믿음을 갖고 선의를 행하는 분이 있어서였다. 처음엔 꽤나 결심을 한 듯 하다.

그런 결심조차도 얼마안가 그 근본 목적이 사라진 계기가 있었는데, "실망"..바로 그것이었다.

종교단쳬라...맑디 맑을것 같았던 그곳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동네였고 ,  그런 맑고 행복한 기대감은 어디로 갔는지 몇 개월 사이에 나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교회안에서도 권력 다툼이 있었고, 돈과 사기꾼들이 있었다. 실제로 큰 믿음을 갖고 있었던 전도사님이나 친구 형제들이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역시 그곳도 그늘이 있었다.

이즈음에서 다시한번 살펴봐야 할 것은 사랑에 대한 것이리라.

성경에서 말하는 가식적인 사랑이 아닌 진실한 사랑. 그것은 과연 존재하는가?


1. 오늘은 빌립보서를 20분간 탐독하고자 한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행복에 가득 차서 보낸 편지다. 그 행복은 전염성이 강하다. 몇 절만 읽어도 금세 그 기쁨이 전해지기 시작한다. 춤을 추는 듯한 단어와 기쁨의 탄성은 곧장 우리 마음속에 와 닿는다.
그러나 행복은 우리가 사전을 뒤적거려 알 수 있는 그런 단어가 아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성 가운데 책을 보고 익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 삶의 특성을 익히려면 제도 같은 것이 필요하다. 수년간 충실한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힌 것을 자신의 모든 행실로 보여주는 사람에게 직접 배워야 한다. 물론 설명을 듣기도 하겠지만, 제자는 주로 스승과 날마다 친밀하게 지내면서, 기능을 배우고 타이밍과 리듬과 터치같음 미묘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법을 익힌다.

바울이 빌립보라는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다 보면, 위에서 말한 스승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울은 우리에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거나, 행복해지는 법을 말해 주지 않는다.
다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그 기쁨은 그가 처한 상황과는 무관한것이다. 그는 감옥에서 편지를 썻고, 그의 활동은 경쟁자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그는 예수를 섬기며 스무 해가 넘도록 혹독한 여행을 한 끝에 지쳐 있엇고, 어느정도 위안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내면으로 경험한 메시아 예수의 생명에 견줄 때, 상황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생명은 역사의 특정 시점에 한 번 나타난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끊임없이 나타나서, 그분을 영접하는 사람들의 삶으로 흘러들고, 계속해서 사방으로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의 편지를 읽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넘쳐흐르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려본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꺼운 마음으로 흔쾌히 하십시오. 말 다툼하거나 따지지 마십시오!. 흠 없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이 더럽고 타락한 사회에 맑은 공기를 불어넣으십시오. 사람들에게 선한 생활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십시오. 환하게 빛을 비춰 주는 메시지를 어둠속에 전하십시오 (빌. 2:14~15)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제한하거나 독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계시다.


적절하게 사랑하는 법을 익히십히오. 여러분의 사랑이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진실하고 지각있는 사랑이 되려면 지혜로워야 하고 자신의 감정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삶을 살되 신중하고도 모범적인 삶, 예수계서 자랑스러워하실 삶을 사십시오. 그것은 영혼의 열매를 풍성히 맺고, 예수 그리스도를 매력적인 분으로 만들며, 모든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 드리도록 하는 삶입니다. ( 빌 1:9~11)


그리스도인의 행복을 설명해 주는 것은, 바로 이처럼 넘쳐 흐르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기쁨은 충만한 생명이며, 어느 한 사람 안에 가두어 둘 수 없는 넘쳐흐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티모시 캘러의 설교의 일부분이다. 많은 깨달음을 주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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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큐티] 셋팅된 우주.

Posted at 2010.07.12 08:21 // in Church art // by MOOVA 무바㏇

유명한 물리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만일 신이 지구를 태양에서 먼 곳에 갖다놓았다면 바다는 모두 얼어붙었을 것이고, 가까운 곳에 놓았다면 바닷물이 끓어넘쳤을 것이다.
지구와 태양은 정말 정밀하게도 또한 계획적이게도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하게 조절되어 있다. 태양의 밝기를 고려할 때, 바닷물이 액체상태를 유지하면서 생명체의 탄생에 필요한 반응을 보이려면 정말 이 만큼의 거리가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조금이라고 멀었거나 가까웠더라면 결코 우리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하고 번성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거의 기적이라 할 만큼 절묘하게 세팅되어 있다.

 
NASA Moonbase Alpha - Trailer

☞ 화들짝 펼치기 [내용 보기]



 The Moon
자.. 이렇게 볼 때 결코 우주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게 아니란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빅뱅이론이나 끈이론, 최근에 발전하고 있는 M이론도 모두 신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는 학문에 불과하지 않을까?

나는 어렸을적 꿈이 물리학자 였다, 그리고 우주에 대한 동경이 꽤나 커서 별자리나 운행등, 그리고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청년기때는 우주에 대한 카페를 운영하면서도 우주과학에 대한 동호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과학적으로 증명된 논리와 정설들을 보면서 더더욱 확신이 드는것은 결코 우주는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셋팅되었다는 결론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만약 사람이 차원적인 의구심과 우주에 대한 끝없은 갈구가 없었다면 달에도 착률 할 수 없었고, 물리학도 이미 버려진 학문이 되었을 것이다. ( 아인슈타인도 이미 우주는 26차원까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자.. 신이 없다고 확실히 믿는가? 그렇다면 신이 없다는 그 증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신에 대한 존재에 대한 의구심은 이제 접어 버리고자 한다. 끝없는 이런 논쟁은 일단 접어두고, 이제부터라도 신의 섭리에 따라 자연의 섭리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기도하면서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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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iznote.tistory.com BlogIcon 사라뽀

    2010.07.12 11:55 신고 [수정/삭제] [답글]

    전, 이러이러해서 신이 있다, 라고 믿어야 하는, 구구절절함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전 유신론자예요.. ㅋㅋ 그냥 태생이, 유신론자입니다. ㅡㅡ;; )
    그럼에도불구하고, 세상은 신의 손길로 가득하죠..

    그리고 우주는, 어려운 '물리학 용어들'을 독파하고서라도
    알고 싶은 '동네'입니다.. ^^

  2. 2010.07.12 16:15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minimonk.net BlogIcon 구차니

    2010.07.12 16:18 신고 [수정/삭제] [답글]

    문득 예전에 제가 한때 빠져 들었던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GAIA)'를 떠올리게 하네요 ㅎ
    제임스 러브록은 '이러한 생명체를 유지하려는 일련의 화학적 불안정성 등의 범 지구적인 의지'가 존재한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의지 자체가 규모에 따라서는 신이 라고 불리울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구 규모 생명체를 유지하려는 의지는 대지의 여신(=GAIA)
    태양계 규모라면 ... 우주 규모라면... 이런식으로 말이죠

    • Favicon of http://moova.tistory.com BlogIcon MOOVA 무바㏇

      2010.07.12 19:49 신고 [수정/삭제]

      여튼 신의 존재에 대한 입장도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으니, 사람이란 존재가 참으로 위대하다고 생각됩니다.
      가이아이론도 저 가이아(GAIA)의 이름을 빌려서 사용했으니 말다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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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큐티] 평안하자. 메시지 신약

Posted at 2010.07.05 10:48 // in Church art // by MOOVA 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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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신약
카테고리 종교 > 기독교(개신교) > 성경학습 > 신약성서
지은이 유진 피터슨 (복있는사람,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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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큐티는 주말에 작성해 두었다가 월요일에 발행합니다.)

성경을 보면 마음이 평안해 진다. 단순히 찾아왔다 사라지는 그런 종류의 일시적인 쾌락은 아니리라.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는다. 성경안에 예수와 같이 살아야 마땅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지키려고 마음먹고 행동해도 잘 안되는게 예수님 따라하기다. 그래도 그걸 생각한다는게 어디인가?! 한낮 인간인지라..감히 신의 영역을 논할 주제넘는 소리는 못하겠다.  

감사하자. 사랑하자. 원수를 사랑하자. 기도하자.
억지로 진실한 표정을 지으며 헤프게 웃어 대는 거짓 설교자들을 조심하자. (본론中)

마음에 남는 구절 (마태복음 5장~7장)

소금과 빛
후하게 배풀며 살아라.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면, 그들도 너희에게 자극을 받아 하나님께,
하늘에 계신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말이 사람을 죽인다.
무심코 형제를 바보라고 부르면 너희는 법정으로 끌려갈 수 있다. 생각 없이 자매에게 멍청이 라고 소리치면 
지옥불이 너희 코앞에 있다. 가장 단순한 진실은, 말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마음에 없는 말
종교적 장식을 멋지게 단다고 해서 너희 말이 진실해지는 것은 아니다. 너희 말을 거룩하게 할수록 그 말의 진실성은
떨어진다. 그러면 그렇다, 아니면 아니다라고만 하여라.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말을 조작하다가는 잘못된 길로 빠진다.

원수를 사랑하여라.
원수가 어떻게 하든지, 너희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라. 누가 너희를 힘들게 하더근,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여라.
그러면 너희는 너희의 참된 자아. 하나님이 만드신 자아를 찾게 될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 되자.

소리내지 말고 은밀히 도와주기
남을 위해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너희 자신이 주목받지 않도록 하여라. 연극배우가 되지 말라는 소리다.

단순하게 기도하여라
또 너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연극을 하지 마라.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다 스타가 되기를 꿈꾸며 기도할 때마다 쇼를 일삼는다.!
세상에는 이른바 기도의 용사들이 가득하나, 그들은 기도를 모른다. 그들은 공식과 프로그램과 비결을 잔뜩 가지고서, 너희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에게서 얻어 내는 방법들을 퍼뜨리고 있다. 그 허튼소리에 속지 마라. 너희가 상대하는 분은 너희 아버지이시며, 그분은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너희보다 더 잘 아신다.

간단한 행동 지침
사람들의 흠을 들추어내거나, 실패를 꼬집거나, 잘못을 비난하지 마라. 너희도 똑같은 대우를 받고 싶지 않거든 말이다.
비판하는 마음은 부메랑이 되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억지로 진실한 표정을 지으며 헤프게 웃어 대는 거짓 설교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이래저래 너희를 벗겨 먹으려는 수가 많다. 카리스마에 감동할 것이 아니라 성품을 보아라. 중요한 것은, 설교자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됨됨이다.. 참된 지도자는 절대로 너희 감정이나 지갑을 착취하지 않는다. 썩은 사과가 열린 병든 나무는 찍혀서 불살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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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 하나님을 믿기 보다.. 알고 있습니다.

Posted at 2010.02.17 18:25 // in Church art // by MOOVA 무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부패와 탈선과 친구까지 속이는 일을 봤던 전.
교회는 믿지 않습니다. 전 하나님을 믿고 맹목적으로 따라 가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 단지, 종교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이 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그냥 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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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ophiako.tistory.com BlogIcon 초하(初夏)

    2010.04.07 20:04 신고 [수정/삭제] [답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넋두리일 수 있으나, 조금 정리를 해서 올리고 공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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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연출

Posted at 2009.12.24 16:38 // in Church art // by MOOVA 무바㏇
종종 기존에 다녔던 교회에서 연출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어떻게 자신에 삶에 충실하지 못할까? 분명히 우리집은 제사를 지내야 하고 대가족이란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 바있다. 그런부분들을 충분히 설명해 주었고, 구지 더 힘들게 교회를 다닐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이야기 한적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성경적인 역사공부는 나에게 힘이된다. 하지만 나머지 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다. 구지 믿기도 힘든 부분을 계속 강요하면서 믿으라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끼리 색깔이 있는 것이지 이것을 내가 하지 않는다고 외면할 필요도 없다. 난 그냥 사람을 대하는 것이고 좋은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일반적인 사람이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며 다른사람 혹은 나쁜사람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변형된 교회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친구따라 교회를 갔을 때 마음이 매우 답답하여 종종 공원을 갔었던 적이 있다. 이런 부분 하나하나를 동네 아줌마들이 소문을 내고 다녔다. 아니 사람이 답답해서 바람좀 쐬겠다는데 왜 그게 입담질에 올라야 할까? 내 싸이월드도 그렇다. 싸이월드는 지극히 자신만의 장소이며 나와 친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이다.
교회사람 몇몇은 내 싸이월드의 일촌이었는데 그 일촌의 정보를 교회사람들에게 공개해버렸다. 이게 말이 되는가??? 나와 내 친한 친구들이 여행을 가서 사진을 올려 놓은 것을 보고 교회다녔던 친구는 매우 싫어했던 것도 사실이고. 여친이 생겼을 때도 그랬다. '나랑 교회에 같이 있자'며 친구를 교회에 잡아 놓으려고 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이렇게 잘못된 교회교육은 한 사람의 정신을 흐리멍텅하게 만들어 버린다. 교회안에서 어떤 여자애가 자취를 한다며 나에게 도시락을 싸서 준 일이 있다. 처음 봤고 도시락을 싸고 나에게 줬다는 것이 고마웠고 일종의 답례까지 해준 상태였다. 친구에게 물었다."갸는 왜 나에게 도시락을 싸서 준거지?"라고 물으니 친구 왈
"다른 생각하고 있다면 버려라. 그건 인간적인 생각이니까 말이야"라고 한다.
인간인 내가 인간적인 생각을 하지 그럼 신적인 생각을 하는가?

교회안에 누군가가 감기가 걸렸다고 하길래 "약을 사서 먹어라"라고 햇지만 그 분 왈..
"기도를 하지 않아서 감기가 걸린거야. 기도를 하면 낳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이게 뭔 일인가?

쓸데없는 배려 비스무리하게 한 행동.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냥 그대로 놔두는게 배려하는 것이지 눈에 뻔히 보이는 일종의 사랑타령으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음악을 했던 친구들이나 공부를 했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교회사람들에겐 매우 좋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졌다. 아니 교회에 있는 친구만 친구일까? 내 소꿉친구들이나 정을 다닌 놈들과 같이 술자리에서 회포를 푸는 모습이 그리도 나쁘게 보였단 말인가?

난 분명히! 제사를 지내야 한다. 구지 가서 수백년동안 이어져 온 우리집안의 전통을 내가 깰 필요는 없는것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을까? 교회안에 스타일을 수세기동안 변형되서 교회가 유리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학문이 발전한 것이지 실제로 예수님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행태를 매우 싫어하실 것이 분명하다.
허구헛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세계만을 이야기하는데 컴퓨터를 하는 내가 그것을 이해하란 소리인가?
난 단지 교회에 빠져서 살고 있는 친했던 내 친구를 일반적인 사회로 돌려놓기 위해 애를 쓴 것 뿐이다.

교회다녔던 몇몇분들은 충분히 대화속에서 이해할 수준의 이야기를 한다. 양로원이나 보육원 고아원같은 곳에 봉사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런것들이 무시된채  집단적 배타주의성향은 정말 잘못된 부분이다.

교회가 변형되었고 욕을 먹고 있는게 이런 부분이다. 사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것이 교회사람들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불교를 다닌다고 배타적으로 나오고 교회를 다니는 무리중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더 혹독하게 대하고,
일반 직장인들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나쁜놈이 되어버리고.. 그 속에서는 그렇다.
얼마나 정신적으로 의지할 것이 없으면 성경이 아닌 다른 체계속에 잡혀사려 하는가?

한사람이 한사람이 모여 사랑스런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느정도 인정을 한다. 하지만 잘못된 체계와 집단적 폭행 성향은 반드시 고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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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ewfigt4.tistory.com BlogIcon phrensy

    2010.03.30 14:05 신고 [수정/삭제] [답글]

    그렇죠. 많은 기성교회들이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죠. 안타깝게도.

    모두들 교회에서 원하는 어떤 크리스천의 stereotype을 '연출'하죠.

    자신의 신앙도 아니고, 자신의 신념도 아닌 어떤 것 같아요.

    그게 되게 아쉬워요.

    치열한 고민도 없이, 오래갈 확신도 없이..

    병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은..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어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섬기라고 하셨던

    그 분이 보시기에 화가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거에요.

    세속과 성스러운 것을 지나치게 구분하는 행위는

    굉장한 인격적 불건강함의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교회교육의 결과이거나.

    근데 많은 교회들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죠.

    그 결과, 기독교는 더이상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게되었고요.

    소통하지 않는 기독교는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사실을 그들은 진정 모를까요.

  2. Favicon of http://moova.tistory.com BlogIcon MOOVA 무바㏇

    2010.03.31 12:49 신고 [수정/삭제] [답글]

    크리스천의 stereotype을 '연출' -- 적절한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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